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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전쟁들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rainbowww 2023. 6. 24. 13:05

전쟁  -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두 대국,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딜로스 동맹 사이에서 431년 BC에서 404년 BC까지 총 27년간 진행된 전쟁입니다.

전쟁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핵심적으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권력 균형에 대한 불만과 그들의 동맹국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아테네의 성장과 그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은 스파르타와 그들의 동맹들에게 위협으로 여겨졌습니다.

전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1. 아키다메놈 전쟁(431-421년 BC): 아테네는 주로 해군력을 이용한 포위 전략을 사용하였고, 스파르타는 육군을 이용하여 아테네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단계는 결국 니키아스의 평화로 끝났지만, 전쟁의 긴장감은 계속되었습니다.

2. 전쟁의 중간 단계(421-413년 BC): 이 시기 동안 아테네는 시칠리아 섬에서의 대규모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결국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3. 디오니시우스 전쟁(413-404년 BC): 이 시기에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제국과 연합하여 아테네에게 해상 전투에서 큰 패배를 안기었습니다. 이러한 패배는 아테네에게 치명적이었으며,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항복하였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역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테네의 패배로 인해 그들의 제국은 사라지게 되었고, 스파르타는 일시적으로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많은 인구를 감소시키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약화시켜,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정복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아테네 :
아테네는 해상 무역과 식민지 확장으로 부를 축적하며 강력한 해군을 보유했고, 딜로스 동맹을 이끌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또한,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가장 초기에 민주주의를 실시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리클레스라는 지도자 아래, 아테네는 학문과 예술이 번영하는 곳이었으며, 이 시기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릅니다.

스파르타 :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군사적 국가였습니다. 스파르타는 군사 훈련에 중점을 둔 엄격한 사회 구조로 유명했습니다. 스파르타의 헬롯들은 국가의 노예로, 스파르타의 생계와 군사 기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고, 아테네와 그들의 동맹에 대항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는 주로 그들의 군사적 전략과 전술,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과의 동맹으로 인해 가능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전통적으로 그들의 군사적 강도와 군인들의 엄격한 훈련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군사 상태에 빠르게 돌입할 수 있었고, 아테네에 대한 전쟁에서 이러한 강점을 잘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스파르타는 지상 전투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아테네의 토지를 공격하고 아테네를 포위하는 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강력한 해군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스파르타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이를 통해 스파르타는 해군을 구축하고 아테네와 바다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전략과 동맹은 스파르타에게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해군에게 중요한 패배를 당하였고, 이로 인해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는 일시적으로 그리스의 주요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장기적으로 스파르타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고, 결국 그리스는 이후에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하게 되었습니다.